운남성의 소수민족

운남성의 소수민족-누족(怒族):

구름의 남쪽 2007. 9. 21. 23:11

 

티베트 접경을 향해 누강(怒江)-누족(怒族)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천험의 협곡을 흘러내리는 누강.

티베트 접경을 향해 누강(怒江)을 따라 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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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이라야 산 중턱을 깎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노폭은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데

더러는 수직 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기어가는 듯 지나야만 한다!

핸들 조작을 조금만 실수해도 지프차가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판이라 

차 안에 타고 있는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가도 가도 가파르게 솟아있는 3~4천 미터 급의 연봉들.

그 사이로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쪽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봉우리마다 사람들이 움막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사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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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누족(怒族)은 이산 저산 옮겨 다니며 불을 질러 옥수수를 심어먹고 사는 것이다.

그래도 모자라는 식량은 봄과 여름이면 산열매를 따먹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석궁(石弓)을 사용하여 산짐승을 잡아먹고 산다.


밤이 되면 공해가없는 밤하늘에 파란색의 별이 뜨고,

그 때쯤이면 이산 저산에도 별이 돋는다. 

 

산꼭대기에 사는 누족(怒族)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멀리서 깜박거리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깥 세상에 알리는 신호인 것 같아 공연히 처연한 느낌이 든다.

 

중국정부는

누강(怒江)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빈곤한 생활 모습을

외부인들에게 알리기가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출입을 금지시키고

오랫동안 외부와 격리시켜 놓았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특별 허가제로 바뀌어서

그나마 바깥세상과  숨통이 트였다.


북반구의 가장 덥다는 7월 하순인대도 

멀리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만년설(萬年雪)이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인다.

그런 오지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경사가 가파른 산을 기어오르자니 몇 번이나 숨이 턱에 와 닿는다.

기를 쓰고 누족(怒族) 마을 까지 기어오르는데 성공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레방아

이곳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옥수수를 물래 방아를 이용하여 찧어먹고 사는 것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옛날 강원도 산골짝에나 있었던 너와집과 능애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어느 한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옛 우리나라의 화전민 집과 같은 정취가 물씬 풍겨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감전된 듯 제 자리에 서버렸다.

놀란 것은 그 집 문지방위에 백묵으로 써놓은 예수(YE SU)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늙은이 내외가 집안으로 들어선다.

여든이 가까워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는 바로

이 마을의 이리야(伊麗我)라는 이름의 전도사

이런 산골짜기에 기독교가 있고 거기다가 전도사까지 있다니!

종교는 아편과 같아 인민의 적이고.

따라서 예수만 믿어도 20년 동안 징역살이를 해야 했던 박해의 땅.

중국에서 말이다.

 

전도사 할아버지의 말을 옮겨보자.

194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3년 전 미국인 부른스가

이곳에 찾아와서 학교를 세우고 49명의 젊은이들에게 예수를 가르쳤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이 바뀌고(1949년 공산화가 되고) 모진 박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예수를 버려 본적이 없다.

 

늙은 전도사의 깊게 팬 주름살이 지난날의 온갖 역경을 말해주는 듯 하여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예배를 보았습니까?

 한 밤중에 이 산 저 산 으로 돌라 다니며 모여서 찬송을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로마시대에 지하 공동묘지를 전전하며 예배를 보던

초대교회의 고난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었단 말인가.

 지난 50년 동안 외부에서 온 교인을 만나본적이 있습니까?

 늙은 전도사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50년 동안이나 외부세계와 단절된 체 모진 박해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꿋꿋이 지켜온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들으면 마음이 처연해지는 장면이었다.

혹시 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늙은 전도사는 또 한 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히 없건만 

아무런 부족을 느끼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신도 수는 세 곳의 교회를 합쳐 3백 명 가랑.

주일이면 몇 십리씩 산길을 걸어와서 예배를 보고 가리라.

 

이 지역의 신도 수는 세 곳의 교회를 합쳐 3백 명 가랑.

주일이면 몇 십리씩 산길을 걸어와서 예배를 보고 가리라.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중국의 개방화 정책으로 박해가 한결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누강(怒江)지역에 살고 있는 누족(怒族)은  2만 5천 명 정도

그들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생활과 의식이

원시시대 말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가도 가도 급경사를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

 세계의 다른 강들은 여유를 가지고 잔잔히 흐르는데   

 왜 하필이면 누강(怒江)만 저리 분노하며 흐르는가?

 그래서 이름마저 누강이라고 지어 부른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양족 절벽을 가로질러 매어놓은 외줄을 타고

공중 곡예 하듯 건너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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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 건너편 산비탈에서 일을 마친 아낙네가 등에는 대광주리에 

짐을 잔득 짊어지고,

가슴에는 젖먹이 어린아이를 안고. 외줄을 타고 건너오는 것을  바라다보면 

오히려 보는 사람이 마음이 조마조마 해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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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시골 마을에 이르자.

마침 장날이어서 가깝고 먼 산속에서 사람들이 내려온다.

이들은 기껏해야 닭 한 마리 돼지새끼 한 마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새벽녘에 집을 출발해서  수십 리의 산길을 걸어 내려와 장터로 모인다.

 

닭 한 마리 팔아서 가계에 보태자는 의도라기보다는

모처럼 인간세상이 그리워 하산한 것이다.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하루 종일 장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들은 서성이며 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해가 지고 철시를 하면 모닥불이 타오르고 남녀노소가 어울려  동심 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인간의 정을 느끼는 것이다

닭이 홰를 치고 동녘 하늘이 밝아오면 이들은 다시 산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날 장날을 기다리며 화전을 일군다.

누족(怒族):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천험의 협곡을  흘러내리는 누강!

       분노하며 흐르는 강이라 하여  怒江 누강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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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족은 2만 7,000여명으로 주로 雲南省의 怒江 양안에서 생활하며

       주위의 기타  민족과 엇갈려 잡거한다.

       누어와 한문을 사용한다.

       

      이 지역은 지난 천년동안  노새를 이용하여  소금과 중국차를 운반하던

      협곡으로  난 車馬久道 (차마구도)  길이 있다. 

      저의 블로그의  중국 땅 탐험으

      잊어진 실크로드 차마고도를 찿아서를  보십시요!

      티베트 접경지역인, 이 지역에

      기독교가 전해지는 과정이 들어있는 차마구도 라는 DVD가 있다.